꽃처럼 피는 삶보다, 단풍처럼 깊어지는 삶을 꿈꾸며, 『곱게 늙기』

내가 어릴 때 어머니께서 자주 쓰시던 말 가운데 "곱다"라는 말이 있었습니다.

어린아이였던 나는 그 말의 의미를 잘 몰랐습니다. 혹시 '곱하기'와 관계가 있는 말일까, '아니꼽다'의 반대말일까, 아니면 '곧다'와 비슷한 뜻일까 하고 엉뚱한 상상을 하곤 했습니다. 그때는 '곱다'라는 단어가 무엇을 품고 있는지 알지 못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조금씩 깨닫게 되었습니다. 곱다는 것은 단순히 예쁘다는 말이 아니었습니다. 곱게 차려입은 한복을 보면서, 곱게 빗어 내린 머리카락을 보면서, 바람에 흔들리는 들꽃을 보면서, 저녁노을에 물든 산을 보면서, '곱다'는 것은 눈으로 보는 아름다움만이 아니라 마음까지 편안하게 만드는 힘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중년이 되어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또 다른 '고움'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말이 고운 사람, 행동이 고운 사람, 표정이 고운 사람, 마음씨가 고운 사람...

이런 사람들과 마주하면 설명하기 어려운 따뜻함이 전해집니다. 나이가 들수록 얼굴보다 인품이 먼저 보이고, 외모보다 마음이 먼저 느껴진다는 사실을 조금씩 배우게 되었습니다.

곱게 늙어가는 중년의 여인
곱게 늙어가는 중년의 여인  이미지출처:chatGPT

그러던 어느 날 서점에서 제 시선을 붙잡는 책 한 권을 만났습니다.

『곱게 늙기』

제목을 보는 순간 손이 먼저 책을 집었습니다.

'그래, 늙는 것은 피할 수 없어도 곱게 늙는 것은 배울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이 책과의 만남이 시작되었습니다. 늙음은 피할 수 없지만, 늙음을 받아들이는 태도는 선택할 수 있습니다. 이 책은 처음부터 늙음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아주 담담하게 이야기합니다.

노화는 자연의 질서이며, 누구도 거스를 수 없는 삶의 과정이라고 말입니다. 우리는 주름을 감추려 하고, 흰머리를 염색하며, 조금이라도 젊어 보이기 위해 애씁니다.

물론 그런 노력도 소중합니다. 하지만 저자는 한 가지를 조용히 묻습니다.

"마음은 얼마나 늙음을 받아들이고 있는가?"

이 질문 앞에서 저는 한동안 책장을 넘기지 못했습니다. 나이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은 결국 자신의 현실과 싸우게 됩니다. 그러나 현실과 싸워 이길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마음의 문을 닫으면 세상이 들어오지 못하고, 결국 자기 안에 갇혀 스스로를 괴롭히게 됩니다.

반대로 마음의 문을 열면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되고, 그 순간부터 삶은 조금씩 평안해집니다. 이 대목을 읽으며 저는 상담 현장에서 만났던 많은 분들이 떠올랐습니다. 고통의 상당 부분은 현실 자체보다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마음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을 우리는 자주 경험합니다.

수용은 포기가 아닙니다. 수용은 현실과 화해하는 용기입니다. 외로움은 없애야 할 적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친구일지도 모릅니다.

이 책에서 또 하나 깊이 마음에 남은 것은 외로움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외롭습니다. 젊을 때는 바쁘다는 이유로 외로움을 잠시 잊고 살지만, 나이가 들수록 그 존재는 더욱 선명하게 다가옵니다. 저자는 외로움을 없애려고 애쓰지 말라고 말합니다. 외로움은 인생의 실패가 아니라 인간 존재의 본질이라고 말입니다.

이 문장을 읽으며 오히려 위로를 받았습니다.

“우리는 외롭기 때문에 누군가를 사랑하고, 외롭기 때문에 서로를 이해하려 하며, 외롭기 때문에 하나님을 찾기도 합니다. 외로움을 적으로 만들지 않을 때, 비로소 외로움도 삶의 일부가 됩니다.”

 나이가 들수록 말이 많아지는 사람이 아니라, 귀가 깊어지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책은 '잘 들어주는 사람'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젊은 사람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훈계가 아니라 경청이라고 말합니다. 이 부분은 제 마음을 오래 붙잡았습니다. 상담이라는 일도 결국 사람의 말을 끝까지 들어주는 일입니다. 누군가를 변화시키는 힘은 정답을 알려주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그의 이야기를 끝까지 품어주는 데 있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하고 싶어집니다.

"내가 살아보니…"

"내 말이 맞아."

"내가 다 겪어봤다."

이런 말들이 어느새 습관이 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진짜 어른은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이 아니라, 상대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줄 줄 아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이 책은 다시 일깨워 주었습니다.

 

꽃보다 단풍이 아름다운 이유

이 책에서 가장 오래 기억될 장면이 하나 있습니다. 저자는 노년을 꽃이 아니라 단풍에 비유합니다. 꽃은 필 때 아름답습니다. 하지만 지고 나면 시들고, 사람들의 발길에 밟히기도 합니다. 그러나 단풍은 다릅니다.

나무 위에서도 아름답고, 땅에 떨어진 뒤에도 아름답습니다.

그 모습을 떠올리는 순간 마음이 먹먹해졌습니다.

‘우리도 그런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 몸은 조금씩 늙어가지만, 정신은 더욱 깊어지고, 욕심은 줄어들고, 사람을 이해하는 마음은 넓어지고, 누군가에게 따뜻한 그늘이 되어주는 사람. 그것이야말로 단풍 같은 인생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저 역시 그런 노년을 맞이하고 싶습니다. 영혼이 맑은 사람은 늙어도 아름답습니다. 책은 마지막으로 영혼의 맑음을 이야기합니다. 젊음은 얼굴에서 드러나지만, 품위는 영혼에서 드러납니다. 세월은 누구에게나 주름을 남기지만, 영혼은 스스로 가꾸어야 합니다.

욕심을 조금씩 내려놓고, 감사하는 마음을 잃지 않고, 용서할 줄 알고, 웃음을 잃지 않는 사람. 그런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더욱 아름다워집니다.

신앙을 가진 사람이라면 이것을 영성이라고 부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신앙의 유무를 떠나 맑은 마음으로 살아가려는 노력은 모든 사람에게 필요한 삶의 자세라고 생각합니다.

 책을 덮으며

책을 다 읽고 난 뒤에도 한동안 제목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곱게 늙기.'

이 짧은 네 글자 안에는 한 사람의 인생이 담겨 있었습니다. 우리는 늙음을 피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어떤 마음으로 늙어갈지는 오늘의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말을 조금 더 곱게 하고, 사람을 조금 더 따뜻하게 바라보고, 조금 더 많이 들어주고, 조금 더 많이 웃으며 살아간다면, 어쩌면 우리도 꽃처럼 화려하지는 않아도 단풍처럼 오래 기억되는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책을 덮으며 제 마음속에 작은 기도가 하나 생겼습니다.

"하나님, 나도 나이가 들어갈수록 더 부드러운 사람이 되게 하시고, 더 따뜻한 사람이 되게 하시며, 누군가에게 오래도록 아름답게 기억되는 단풍 같은 사람이 되게 하소서."

이 책은 늙는 법을 가르쳐 준 책이 아니었습니다. 어떻게 살아야 마지막까지 아름다울 수 있는지를 조용히 들려준 책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도 다시 이 제목을 마음속에 새겨 봅니다.

“곱게 늙기”

 어쩌면 그것은 노년의 목표가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삶의 방식이어야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 … … … … …




📚 도서 정보
       제   목 : 곱게 늙기
       지은이 : 송차선
       출판사 : 샘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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